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연말
인종, 음식, 언어를 비롯해서 주변의 모든 조건이 변해도 연말은 추운 거라고 알고 30년을 지내오다, 12월 마지막주에도 에어콘을 틀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땅에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던데, 가까운 사람과 팔짱끼고 걷다가 새로내린 눈밭에 살금살금 발자국 남기고 눈뭉쳐서 장난치다 웃음보가 터졌음 좋겠다.
That's a proper way to end the year.
Thailand
동료의 결혼식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방콕에 다녀왔다.
자질구레한 일상과 가난을 내보이지 않는 싱가폴과는 달리, 환하게 드러난 낡은 시가의 혼란스런 풍경들이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반면 태국에서 온 한 동료는 최소한 길가다 개똥을 밟을 일은 없지 않느냐며 점차 싱가폴의 완벽함과 결벽증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더러운 물이 튀고 위험하리만큼 속도를 내는 boat를 타고 달려 시내로 이동했던 일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늘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 상황을 피해 서민들이 이용하는 값싼 교통 수단이라고 하는데, 몇년전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방콕에 왔을때는 어쩌다 툭툭만 타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하천을 따라 이어진 주거지와 시장통에서, 왕을 존경하는 상냥한 태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그렇게 보냈다.
20091224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IKEA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주말 오후에 IKEA 구경.
IKEA 정말 사랑한다. 실용적이고 견고한 원목의 가구들, 위트넘치는 선반 장식,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컬러 - 화이트, 블랙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는 레드. 특히 빨강색 Norvald Chair는 너무 이뻐서 방 한가운데 모셔놓고 물고 빨고 하고 싶었다! (아, 집주인이 마련해준 새 의자가 있지만 결국은 사게 될 것 같다)

Showroom을 구경하면서 내 방이 왜 그리 훵해보이고 부자연스러운지를 알게 되었는데, 우선 공간이 좁아보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가구를 벽에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고, 산만해보이는 것이 걱정되어 살림살이를 지나치게 감추는 수납을 해온 것이다. 선반을 설치해서 작은 소품들을 드러내고 적절한 패턴의 fabric을 사용하면 좀 더 아늑한 느낌의 공간이 된다.
사실 모든 종류의 decoration은 cheesy하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피해왔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게 그런게 아닌가보다. I like cheesy.


20091219
Little India
내가 사는 곳은 Little India 지역 끝자락.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풀밭이 뭐 그리 대수냐 생각했는데, 주말이 되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맛있는거 나눠먹고선 뽕짝을 틀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날도 더운데 그냥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낮잠을 청하시면 안될까요.
햇볕에 적당히 달구어진 방에서 멀리 카레 향기가 솔솔 풍겨올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가 비디오를 따라하면 이것이 바로 인도식 핫요가.
아이고.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High street center
Singapore river와 Clark Quay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한달을 지냈다. 좁은 땅이라 전국에 건물을 높이 쌓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여행자 또는 expat이 아니라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panoramic view 인듯해서 기록해둔다.

20091216 #27-3 High Street Center

20091216 #27-3 High Street Center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없이 살아보기
집에 인터넷 없이 살아볼까 고민중이다. 가뜩이나 불친절하고 느려터진 이곳 서비스 선터에 전화를 걸어 사람 오길 기다는게 귀찮아서 미루고만 있었는데, 억지로 하루 이틀 지나보니 없이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Reader 읽고 podcast 듣고 email 체크하면서 쫒기듯 보냈던 저녁 시간이 무얼하며 보내던지간에 좀 더 여유로워졌고, 초저녁에 신경을 덜 자극해서인지 밤이 깊어지니 차분해지면서 편안하게 잠이 왔다.
항상 있던 것들이 "없는" 상태는 - 집, 통장, 핸드폰, 인터넷 나아가 친구들까지 - 좀 곤란하고 때론 허전하지만 새로이 깨닫게 되는 점도 많다.
항상 있던 것들이 "없는" 상태는 - 집, 통장, 핸드폰, 인터넷 나아가 친구들까지 - 좀 곤란하고 때론 허전하지만 새로이 깨닫게 되는 점도 많다.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소풍
아일랜드,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온 여자 다섯명이 우리팀인데, team building 명목으로 오늘 가까운 섬에서 반나절을 보내기로 해놓고는 다들 귀찮아져서 결국 mall에 가서 발마사지 받고 일찌감치 헤어졌다.
Such is (Singaporean) life!

20091215
Such is (Singaporean) life!

20091215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이사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번해엔 정말 여러번 짐을 싸고, 풀고 하고 있다. 아마 마지막이겠지, 올해엔.
스트리트 뷰로 본 새집
좌측에 SOHO@Farrer라 적힌 흰색 건물 4층이 나의 집. 앞쪽 창문으로는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골목 뒷쪽으로는 번화한 Little India의 거리가 이어진다. 주말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도계 남자들이 - 휴일을 맞은 construction worker들 - 모여들어 공원에 누워 낮잠을 청하거나 공을 차거나 하는데 대체로 평화롭다고 한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Ikea로 깔끔하게 꾸며주었다. Built-in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부엌이 약간 좁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마음에 든다.
살림살이 불리지 말고 검소하게 지내야지.
스트리트 뷰로 본 새집
좌측에 SOHO@Farrer라 적힌 흰색 건물 4층이 나의 집. 앞쪽 창문으로는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골목 뒷쪽으로는 번화한 Little India의 거리가 이어진다. 주말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도계 남자들이 - 휴일을 맞은 construction worker들 - 모여들어 공원에 누워 낮잠을 청하거나 공을 차거나 하는데 대체로 평화롭다고 한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Ikea로 깔끔하게 꾸며주었다. Built-in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부엌이 약간 좁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마음에 든다.
살림살이 불리지 말고 검소하게 지내야지.
Google office
오피스 내 자리에서 내려다본 풍경. 무더운 오후면 저 멀리 바다 끝에서 비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선착장의 거대한 기중기가 컨테이너 박스를 차례대로 쌓아 옮기는 재미난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다. 안쪽 해안선을 따라 하얗게 빛나는 것은 동쪽 해변의 bed town에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
워낙 좁은 땅이라 이 정도면 싱가폴의 많은 부분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20091211
Back to Singapore
Kuala Lumpur는 싱가폴에 비하면 서울과 많이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거칠게 밀치고 지나가거나 열차가 꽉 찼는데도 꾸역꾸역 들이미는 것을 보고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쇼핑몰의 내부는 훨씬 더 모던하고 동선이 매끈했다. 반면, 거리는 개발의 시차로 인해 상이한 요소들이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서울사람이라면 익숙할, 도시 전체가 욕망으로 들끓는 듯한 그런 기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욕심없이 예의바르고 평화롭게 부유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싱가폴과는 전혀 다른 다이내믹이었다.
뉴욕에서 온 한 동료는 싱가폴이 언제나 "real time"이며 사람들은 "here and now"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축적, 개발, 상승에 대한 악착같은 욕구없이 현재형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싱가폴을 "인간이 만든 paradise"라고 소개했었다 - 글쎄, 잘 모르겠다. 난 이곳에서 무기력함을 감지할 때가 많다. 그리고 종종 기운이 빠진다. 어쩌면 "paradise"가 나라는 사람의 기질에 적합하지 않은 삶의 mode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Malaysia
Kuala Lumpur로 짧은 출장을 다녀왔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폴과 달리 드넓은 영토의 많은 부분이 검푸른 녹지로 덮여있다. 저물녘에 시 외곽 도로는 조금 스산해보였다.
낯선 곳에서 압축된 일정에 시달린 탓인지,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싱가폴이 집처럼 느껴지면서 가벼운 안도감이 들었다. 아, 집에 오니 좋다.


20091208
낯선 곳에서 압축된 일정에 시달린 탓인지,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싱가폴이 집처럼 느껴지면서 가벼운 안도감이 들었다. 아, 집에 오니 좋다.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Clark Quay
평소 기계를 탐하는 편은 아니지만 각 상품들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늘 궁금하긴 하다. 가끔 리서치도 해본다. 그러나 일단 아이폰을 손에 넣고나니 아이팟, 플립, 카메라, 핸드폰, ebook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단숨에 잠잠해졌다.

20091206 Clark Quay에서 찍은 첫사진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Iphone
아이폰을 사기로 결심했다. 탐나는 기능들이 많다지만 사실 카메라가 필요하기 때문.
지난해에 찍은 사진의 80%가 초 저화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었다. 무늬만 카메라였지 성능은 토이 수준이었는데도 늘 그것만 사용하게 됐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카메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다!) 이번엔 쓸만한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 나가보니 은행에서는 개인 연락처가 있어야 계좌를 열어준다고 하고 SingTel 대리점에서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 개통해 준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16G는 때마침 품절이라 하니 어쩌란 말인가.
해뜨면 다른 대리점에서 다시 시도해보리라!
지난해에 찍은 사진의 80%가 초 저화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었다. 무늬만 카메라였지 성능은 토이 수준이었는데도 늘 그것만 사용하게 됐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카메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다!) 이번엔 쓸만한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 나가보니 은행에서는 개인 연락처가 있어야 계좌를 열어준다고 하고 SingTel 대리점에서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 개통해 준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16G는 때마침 품절이라 하니 어쩌란 말인가.
해뜨면 다른 대리점에서 다시 시도해보리라!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Anthropologist
솔직히 엇그제는 이곳의 삶의 조건이 시원찮은 것 같고 혼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일찍 박차고 나와 몇시간 동안 거리를 쏘다녔다.
사실 싱가폴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진지하게 상상해보지 않았다. 애머스트가 보스톤 근교인줄로만 짐작했던 그때처럼 (실제로는 highway를 달려 3시간 거리), 싱가폴이 South East Asia의 정확히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지리적, 문화적인 무지함과 더불어 생활상의 어려움도 구름처럼 막연한 상태로 이곳에 왔다.
예측하지 못한 것들이 일으키는 당혹감과 피로, 새로이 주어진 조건에 대한 세속적인 판단 같은 것들 때문에 나의 타지 생활은 늘 한탄과 원망과 눈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눈물은, 얼마전 동네 음식을 사다먹고 대단히 체한게 너무 아프고 황당해서 좀 울었다)
이럴땐 군중에 떠밀려 낯선 거리를 구경하면 도움이 된다. 다른 모양과 냄새를 지닌 사람들을 관찰하고, 익숙하지 않은 건물 모양과 상품들과 행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없었던 호기심이 생겨나고 마음도 조금은 넓어지는 기분이다. 객관화의 힘? 인문학 교과서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진지한 인류학자의 마음가짐이라면 어디에서든 모든 하루가 고생스러운 일상이기보다는 흥미롭기 그지없는 현장탐사가 될 것이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Mall
싱가폴 출장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Well, you've been to a mall, right?" 이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는 싱가폴에 대해 단편적이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곳엔 Mall or nothing이라고 할만큼 도처에 mall이 널려있다.
왠만한 스포츠광이 아닌 바에야 야외 활동을 즐길만한 날씨가 아니다보니 실내 활동이 자연스럽다. 이곳의 mall은 거리 곳곳에 쥐덫처럼 늘어서 뜨거운 거리에 에어컨 바람을 흘리며 행인을 끌어모으거나, 복잡하게 설계된 지하통로를 통해 MRT와 공공건물로부터 군중을 수혈받는다.
집을 보러다닐때도 agent는 집보다는 근처 mall의 위치, mall의 규모, mall의 건설 계획 등 mall의 소개에 더 열을 올리곤 했었다. 집보다 mall을 먼저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서 집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의심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곳의 mall을 몇번 겪어보니, 오락거리이자 가족 행사이자 취미이고 산책과 휴식과 만남을 행하는 mall-ing은 보통 싱가폴 사람들의 생활에서 핵심적인 activity인 것 같다. 서울에서 재미삼아 행하는 쇼핑과는 scale과 intensity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근처에 mall이 있다는 건 단순히 가까운데 콩나물 파는 곳이 있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Orchard Road의 노골적인 현란함과 환상성은 옆집 mall이 제공하는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지만, 이곳 출신이라면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2009년 11월 30일 월요일
15일째
싱가폴 땅에서 15일째 되는 날.
*
관광객의 눈으로 본 싱가폴은 거대한 공사판이고, 쇼핑몰이고, 박물관이다. 서울만한 좁다란 땅에 세가지 모드가 동시에 작동중이니 어디에서나 진귀하고 어리둥절한 풍경과 마주할 수 있다. 한편 온갖 모순이 혼재하는 도시 의 인상에 반해 이곳 사람들이 주는 느낌은 어딘지 모르게 일관되게 온순하다는 것이 나에겐 큰 미스테리이다.
*
싱가폴에 도착하자마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을 보러 다녔다. 이곳에서 집구하는 일은 쉽지가 않다. 현지 사람들이 거주하는 가족용 주거지(HDB)와 외국인이 선호하는 주거 형태(콘도)가 분리되어있고, 나와 같은 평범한 회사원이 혼자 지낼만한 affordable하고 적당히 현대적인 스튜디오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고 했다.
사실 먼나라의 가정집을 들여다보는 것이 흔치않은 경험이기도 해서 guided tour 삼아 기쁜 마음으로 여러 곳을 둘러보았다. 17개를 보았는데도 적당한 곳이 없어 낙심하던 찰나 정말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했다. 하얗게 빛다는 마감재, 공원을 향해 난 커다란 창, 스마트하게 배치된 적당한 크기의 공간. Farrer Park의 한 스튜디오를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고, 집이나 남자와 같은 큰 문제일수록 어느정도 직감에 의존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에 따라 오래 고민하지 않고 계약을 했다.
서울에서 같은 값이면 Tower Palace까지는 아니더라도 꽤나 호화로운 오피스텔에서 늘어질 수 있으련만. 싱가폴의 집값이 혹독한 것을 인정하고 대신 혼자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시간을 샀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호기심에 계산해보니 깨어있는 자유시간 1시간에 만오천원 정도를 지불하는 셈이다. 아아 세상에, 열심히 살지 않으면 안되겠다.
2009년 10월 29일 목요일
D-17

내가 베이시스트로 참여하는 마지막 공연이 이번주 금요일 청담동 Texas Moon에서 있을 예정이어서, 마라톤 및 시험으로 잠시 외유했던 밴드 맴버들과 함께 오랫만에 합주하는 시간을 가졌다.
앤드류와 신화가 나에게 베이스를 안겨주며 밴드 비슷한 걸 만들어보자고 했던 저녁이 벌써 일년 전이다. 도레미에 익숙해지기도 전에 회사 연말 파티에서 연주했고, 운좋게도 김창완 밴드 파티에도 한곡 연주했었다. 그후 나는 앤드류의 목없는 Steinberger Spirit을 넘겨받았고 신화는 자작곡을 만들어냈으며, 현재씨가 중후한 리드 기타로 우리와 얼마간 함께 하다가 Wonderful Tonight으로 멋진 프로포즈를 날린 후 떠나기도 했다. 마음씨 좋고 기타도 엄청나신 사장님이 반겨주는 Texas Moon은 우리의 아지트였다.

마음맞는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좋은'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정말 근사한 일이다. 게다가 내가 천천히 악기에 익숙해지는 긴 과정을 너그러운 인내심으로 지켜봐준 밴드 맴버들과 관객들을 가졌다는 건 또 얼마나 행운인지.
2009년 10월 28일 수요일
D-18
눈 깜박할 사이에 또 며칠이 흘러가버렸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해보면 일상의 시간은 너무나 짧을 따름이다.
# 금요일 저녁 쓰바양과 홍대에서 만나 시간을 보냈다. 저녁 식사와 함께 소다와 맥주의 중간 단계인 일본 음료를 마셨고, 빈티지샵에서 잠시 옷구경을 하고, 빈티지 카페에서 "우리도 나중에 이런곳 하나 있었으면" 공상하며 칵테일과 올리브 절임을 나누어 먹고 헤어졌다.
# 토요일 오전 회사 동료 겸 친구들과 강남 버터핑거에서 접선. 가끔 이유없이 소집해도 아무말 없이 시간을 내어주는 고마운 녀석들과, 야단스럽게 40분 가량을 기다려 브런치를 먹었다. "Diner의 맛". 메이플 시럽과 허니 버터를 겹겹이 발라 팬케익 두장을 맛있게 먹어치웠다.
# 일요일 정오 혜림이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학교로 갔다. 선후배, 동기들 모두 함께 오랫만에 얼굴도 보고 혜림이의 결혼사진에도 출연했다. 부페에 줄이 길게 늘어서 있어서인지 이상하게 피곤해졌고, 얼마 버티지 못하고 엉성하게 인사한후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와버렸다.
# 오늘은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학교 선배를 만나서 장갑끼고 뜯어먹는 광화문 갈비를 맛보았다. 하드코어. 세종문화회관에서의 공연기획일 이야기도 듣고, 여행담과 사람들 안부도 주고받았다. 담배와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했는데 그리 나쁘진 않았다.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
D-22
겨울에 한층 가까워진 차갑고 맑게 개인 아침을 맞이하며, 한여름의 외향성의 에너지보다는 겨울의 명상적인 분위기에 더 끌리는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가벗고 크리스마스를 보낸다는 적도의 나라로 떠나야하는데, 큰일이다.
뉴 잉글랜드에서는 유난히 고요한 밤을 지나 창문을 열면 늘 이런 풍경이었다. 10월부터 4월까지 이어지는 긴 겨울은 혹독했지만 겨울잠자며 몽상하며, 편안하게 지냈던 기억뿐이다. 이제는 더 이상 현실이 아닌 추억이기 때문일까.


D-23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책을 정리했다.
책은 그냥 종이와는 달라서 도저히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유년시절부터 교육된 책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겠지만, 책을 버리는 건 왠지 우주적인 질서에 역행하는 듯한 그런 찜찜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사서 읽지 않은 책들과,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된 분야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으나 소장할 이유까지는 없는 책들을 골라내는데 여러 시간이 걸렸다. 냉정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실제로 관심을 갖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와 깊이의 책인지 또, 계속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데 자꾸 개입하는 의무감과 허영, 오지랖 같은 것들 때문이다. 계속 붙들고 있으려는 책들은 사실 결코 나의 일부가 되지 못한 책들이다.
고심끝에 걸러낸 책들을 신촌의 "숨어있는 책"으로 가져가 팔았다. 골초인데다 안색이 창백한 책벌레 스타일의 주인장 아저씨가 책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반겨주고, 내가 가져가는 책들을 보고 "오, 아주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덕분에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어린이처럼 나는 조금 으쓱해지고, 또 많이 가벼워질 수 있다.
2009년 10월 21일 수요일
D-24
Now it's official. 오늘 싱가폴로 가는 편도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익숙한 환경과 생활에서 벗어나 낯선 곳에서 새로이 정착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지만 - 그리고 이번해엔 뭔가 변화가 있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지만 - 모든 것이 명확해지고나니 왠지 싱숭생숭해졌다.
스물셋엔 어디에서 무엇을 하던 잃을 것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서른살엔 무언가 얻는 것이 있으면 같은 무게로 잃는 것이 있고, "경험삼아"의 마음가짐만큼 미덥지 않은 것이 없다는 걸 안다. 게다가 나이가 들면서 호기심만큼 애착도 늘었다. 아끼는 물건, 좋아하는 공간, 소중한 사람들과 멀어져 잃게 될까바 벌써부터 마음 졸여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서울에서의 3년동안 그닥 재미있게 지내지 못한 것 같다...
2009년 10월 15일 목요일
요가
요가를 다시 시작했다.
한동안 쉬면서 굳어진 근육들을 천천히, 아주 힘겹게 풀어가면서 나의 몸이 얼마나 고집스럽도록 신축성이 없는지, 팔 다리는 또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실감하게 된다. 제 한몸 가누지 못해서 바들바들 떨고 있는 걸 보면 조금 처량하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요가의 모든 자세에서 호흡과 함께 관절과 근육을 조금씩 늘여가는 것이 관건인데, 이때 느껴지는 미세한 당김과 결림과 저림들이 몹시 고통스러워 차라리 treadmill에 몸을 던져 그런 감각들을 느낄 새도 없이 탈진해버리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만두고픈 충동을 꾹 참아내고 다음 호흡에서 조금 더 깊고 큰 동작으로 이동하는 그 순간은 정말로 큰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다.
최근에 깨달은 한가지는, 몸과 마찬가지로 마음도 호흡을 멈추지 않은채로 집중하다보면 조금씩 유연해지고 강해진다는 것.
2009년 8월 9일 일요일
아마겟돈 스카이
오늘 종각에서 일을 마치고 경희궁 뒷길로 산책가는 길에 재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뭔가 불길하고 표현적인 하늘을 목격했다. 이번 여름엔 아열대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오바스러운 하늘을 자주 보게 된다. 애머스트에서는 파란 하늘에 흰 뭉게구름이 겹을 이루며 지평선까지 퍼져있는 평화로운 하늘이 잦아 심슨 스카이라 불렀었는데, 서울에서는 기후 변화 때문인지 이런 하늘 모습이 잦아지는 듯 하다.


2009년 7월 23일 목요일
집
#1.
독립하기로 마음을 먹고나자, 오랫동안 내면의 풍경으로만 해독되어왔던 서울이 졸지에 비용과 편익을 축으로 하는 분석의 대상이 되었다. 거리가 아름답다는 사실이나,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나누었던 대화 또는 동네와 얽힌 달콤쌉싸름한 추억의 결들은, 내가 가진 돈으로 살만한 곳인가, 내가 가진 돈만큼의 혜택을 내줄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에 큰 도움을 주지 못한다. 하지만 그것들은 나의 결정의 방향을 나도 모르는 새에 정해버리고 말았다.
#2.
난 강남은 사람이 제대로 뿌리내리고 살만한 곳이 못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침실과 서재를 분리해야 하는 것처럼, 강남은 일하거나 노는 곳이지 잠을 잘 곳은 아닌 것만 같다. 게다가 강남에서의 2.5년의 시간 중 단 한차례도 시간내어 탐험해보고 싶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골목을 만나보지 못했다. 모든 것이 외설적일만큼 새롭거나, 인공적으로 빛나거나, 지나치게 붐빈다. 아침마다 지하철을 타고 강을 건널때마다 강북의 꼬부라진 골목길 사이에 숨어있는 옛집이나 궁궐들, 차분하고 다정한 사람사는 흔적들이 그리울 지경이다.
#3.
새로운 집을 상상하면서 가장 즐거운 것은, 집근처 어느 미지의 길들을 탐사하면서 보낼 시간들이다. 마음에 드는 카페와 오후에 걷고 싶은 산책로도 발견할 것이다. 오랫만에 카메라도 꺼내들 수 있을 것 같다. 미국에서 세들어 살았던 뉴잉글랜드식 목재 건물의 이층 작은 방처럼 다시 나만의 공간을 꾸미는 재미와, 아직 아무와도 얽히지 않은 시간들을 소박하게 채워가며 느낄 기쁨도 기대가 된다.
2009년 6월 3일 수요일
시청 앞 광장
"서울시 청사로 사용되고 있는 건물은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세워졌다. 지금은 더 이상 경성이 아니지만, 서울 시청사와 경성부 청사는 동일 건물이다. 나는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풍경을 서울 시청사 현관 입구에서 본다. ...내가 서울 시청사 현관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서만 원구단, 덕수궁, 숭례문을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청사-원구단-숭례문-경운궁(덕수궁)은 시청역 광장에서 사각의 형상으로 대립하는 구도(constellation)을 형성한다. 서울에 자연사 박물관은 없다. 하지만 사람들은 시청 앞 광장이 서울이 숨기고 있는 위대한 자연사 박물관이라는 것을 모른다. 이 광장에서는 상이한 시간이 전시되어 있다. 유교적 조선의 수도 한양은 경운궁(덕수궁)을, 대한제국의 수도 횡성은 원구단을, 식민지 경성은 시청사를 남겨두었다. 숭례문은 1398년을, 경운궁은 1897년을, 원구단을 1897년과 1919년 사이를, 시청사는 1926년을 가리킨다. 2002년 시청앞 광장은 2002 World Cup Korea-Japan의 상징물이 차지하고 있다. 아름답지 않은가? 이곳은?"
- "서울 시청 광장은 서울에서 가장 아름답다, Seoul Arcade Project, Exposé", 노명우
가장 아름다운 것을 아무렇지 않게, 또 체계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그런 힘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서울은 점차 영혼이 없는 존재가 되어가는 것 같다.

2009년 6월 1일 월요일
꿈
얼마전 약간의 몸살 기운을 동반한 혼곤한 잠속에서 인생을 조망하는 꿈을 꾸었다.
공기처럼 가벼운 마음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한 이 꿈속에서, 나는 집앞 골목에서 우연히 크고 아름다운 도서관을 발견했고 마치 애머스트 칼리지의 살롱과 같이 꾸며진 그 곳에서 오랫동안 마음에 드는 책들을 뒤적이면서 시간을 보냈다. 밖으로 나와 산책을 하는 길엔 남미의 것일듯한 태양이 가득한 거리를 걸으며 아주 작은 뷰파인터를 지닌 수동 카메라로 검은 피부를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찍었다. 꿈의 마지막 장면은 가깝게 여기는 사람이 다정한 몸짓으로 나를 반겨주는 것이었다.
지적 모험, 창조적인 영감 그리고 의미있는 교감 - 원하는 모든 것.
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노트] A Happy Commercial 행복한 소비-자본과 건축공간
소비공간은 여러가지 활동이 발생하는 공간적 실체이자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가 반영되는 사회적 공간이다. 이러한 소비공간은 전근대의 시대를 지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거대자본의 탁생과 함께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자본들에 의한 시장구조의 변화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완력한 분리의 체계를 양산했다. 생산품으로서의 상품은 생산자의 노동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후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노동의 흔적을 읽을 수 없는 상품은 상품 자체만의 동일identity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구매의 행동까지 이끌어지기 위해선 상품의 스펙터클spectacle, 즉 상품의 '기만적 외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환등상phantasmagoria이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만보객은 소비사회를 통해 형성된다. 발터 벤야민은 환등상에 취해 비틀거리는 배회하는 소비자들에게 '만보객Flâneur'이라는 은유적 신분을 부여한다. 만보객은 환등상의 소비를 열망하며, 그리고 그 소비의 행동으로 쇼핑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느리게 걷는 행위'를 통해서 최초의 행동의 상품화를 이끌어낸 주체이다.
근대적 시선은 환등상이라는 상품의 스펙터클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환등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이미지까지 상품의 세상에 높여짐을 인식하면서 성립된다. 이 점은 자신의 행동하는 이미지 자체를 의식하며, 그리고 그러한 시선을 욕망하는 나르시즘적 측면을 행동의 상품화는 의도하는데 이 점에서 근대적 시선의 형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68)
만보객과 상품. 이 둘은 만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즉, 그것은 만보객의 걷는 방법과 상품이 만보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다양하다 할 수 있다. 이 둘이 만나려면 장소가 필요하다. 그 장소는 1차적으로 도시, 거리 아케이드 (벤야민의 19세기형 만보), 백화점 같은 나의 몸이 담겨 있는 공간적 장소일 수도 있고, TV나 라디오처럼 물리적인 나의 몸의 일부를 이용하는 제한적 장소(미디어) 일 수도 있다. 이런 미디어를 통한 만보는 나의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소비적 만보에 비해 공간의사용을 최소화하며, 상품은 실제의 물성을 떠나 이미지로서 만보객에게 다가온다. (304)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밴드

어제 큰 행사를 마치고 모두와 맥주 한잔 하러 간 곳에 외국인 언니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3년전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산을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외국인 밴드가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근무하는"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 보인 것이 처음이었고 또 가까운 사람과 한잔하는 그 사적인 공간에서 감정적인 차원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뻘쭘했던 것이다.
어제도 그 묘한 불편스러움은 여전했고,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었다던가 직장인이 되었다거나 일산의 변두리가 아닌 강남 한복판이라는 사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20090521 삼성동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콩나무

얼마전 서점에서 책을 사고 콩을 담은 캔 하나를 받았다. 재미삼아 물을 주고 기다렸더니 곧 커다란 싹이 났고, 주말 동안 혼자서 이만큼 자라나 있다. 다음주 쯤에 낚시줄을 드리워주면 줄줄 감고 올라가려나.
콩에 적힌 메세지가 "부자되세요"여서 적잖이 실망했지만 (언제부터 저것이 덕담의 일반 명사가 되었나), 평소 티격태격하는 나와 동료 S군의 틈바구니에서 평화로운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는데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있어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종로 산책
다음주 초에 있을 큰 발표의 내용을 구상하러 종로에 나갔다. 평소엔 집과 회사만 오가다보니 종로엔 격주로 걸음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변해있는 경관에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얼마전 피맛골에 얽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취재한 TV 프로를 본 기억이 나는데, 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니, "이 건물 2층에 '뚜주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지인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와보니 없어져서 그렇다" 고 대답했다.
어떤 이들에겐 수십년간 익숙했던 생활 공간들을 아무렇게나 파괴해도 되는 것일까.
산책 중 목격한 또 하나의 사실은, 대로변을 마주한 세운상가 한 동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파란 잔디까지 심어진 것을 보면 공사가 끝난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크게 침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고급 전자 상가로서의 그 명성을 목격한 적도, 쇠락 이후에 도청/감청 장비나 포르노 비디오 같은 요상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을 드나든 적도 없지만, 세운상가는 나에게 최첨단에 대한 근대적 욕망을 증거하며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도시의 어떤 과거와 접속하고 싶을때, 세운상가는 그 창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거칠고 투박한 구조와 묘한 주상 복합의 형태가 요즘 건물들과 달리 낯설다 못해 신비로워서 이따금씩 길을 지날 때마다 눈으로 일별하곤 했던 것인데.
서울의 거리를 걸으면 낡고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것이 너무나 자주 목격되어 절박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본과 이윤과 시각적 합리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몰라도, 그러한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많은 가치들이 너무나 가볍게 취급되는 듯 해서 몹시 슬퍼진다.
20090517 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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