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28일 월요일

연말

인종, 음식, 언어를 비롯해서 주변의 모든 조건이 변해도 연말은 추운 거라고 알고 30년을 지내오다, 12월 마지막주에도 에어콘을 틀지 않으면 잠들 수 없는 땅에서 어리둥절한 상태로 한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서울엔 눈이 많이 왔다던데, 가까운 사람과 팔짱끼고 걷다가 새로내린 눈밭에 살금살금 발자국 남기고 눈뭉쳐서 장난치다 웃음보가 터졌음 좋겠다.

That's a proper way to end the year.



Thailand

동료의 결혼식을 위해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방콕에 다녀왔다.

자질구레한 일상과 가난을 내보이지 않는 싱가폴과는 달리, 환하게 드러난 낡은 시가의 혼란스런 풍경들이 이상한 안도감을 느끼게 했다. 반면 태국에서 온 한 동료는 최소한 길가다 개똥을 밟을 일은 없지 않느냐며 점차 싱가폴의 완벽함과 결벽증을 사랑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더러운 물이 튀고 위험하리만큼 속도를 내는 boat를 타고 달려 시내로 이동했던 일이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 늘 정체에 시달리는 도로 상황을 피해 서민들이 이용하는 값싼 교통 수단이라고 하는데, 몇년전 가난한 학생 신분으로 방콕에 왔을때는 어쩌다 툭툭만 타고 다녔는지 모르겠다.

하천을 따라 이어진 주거지와 시장통에서, 왕을 존경하는 상냥한 태국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구경하며 한여름의 크리스마스 이브를 그렇게 보냈다.

20091224

2009년 12월 21일 월요일

나무들

사시사철 무성하게 자라는 복받은 열대의 나무들. 두팔로 세번은 감아야하는 무서운 덩치와 푸르다못해 시커먼 머리채들이 으스스하기만.

 

20091220

2009년 12월 20일 일요일

IKEA

비가 왔다 그쳤다를 반복하는 주말 오후에 IKEA 구경.

IKEA 정말 사랑한다. 실용적이고 견고한 원목의 가구들, 위트넘치는 선반 장식,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컬러 - 화이트, 블랙 그리고 정말 마음에 드는 레드. 특히 빨강색 Norvald Chair는 너무 이뻐서 방 한가운데 모셔놓고 물고 빨고 하고 싶었다! (아, 집주인이 마련해준 새 의자가 있지만 결국은 사게 될 것 같다)


Showroom을 구경하면서 내 방이 왜 그리 훵해보이고 부자연스러운지를 알게 되었는데, 우선 공간이 좁아보이는 것을 두려워해서 가구를 벽에 몰아세우는 경향이 있고, 산만해보이는 것이 걱정되어 살림살이를 지나치게 감추는 수납을 해온 것이다. 선반을 설치해서 작은 소품들을 드러내고 적절한 패턴의 fabric을 사용하면 좀 더 아늑한 느낌의 공간이 된다.

사실 모든 종류의 decoration은 cheesy하다고 생각해서 어떻게든 피해왔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는 게 그런게 아닌가보다. I like cheesy.


20091219

Little India

내가 사는 곳은 Little India 지역 끝자락. 골목 어귀에 있는 작은 풀밭이 뭐 그리 대수냐 생각했는데, 주말이 되니 사람들이 모여들어 맛있는거 나눠먹고선 뽕짝을 틀고 춤을 추며 잔치를 벌이고 있다. 날도 더운데 그냥 조금 떨어진 공원에서 낮잠을 청하시면 안될까요.

햇볕에 적당히 달구어진 방에서 멀리 카레 향기가 솔솔 풍겨올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요가 비디오를 따라하면 이것이 바로 인도식 핫요가.

아이고.

2009년 12월 18일 금요일

High street center

Singapore river와 Clark Quay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파트에서 한달을 지냈다. 좁은 땅이라 전국에 건물을 높이 쌓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여행자 또는 expat이 아니라면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의 panoramic view 인듯해서 기록해둔다.


20091216 #27-3 High Street Center

2009년 12월 17일 목요일

없이 살아보기

집에 인터넷 없이 살아볼까 고민중이다. 가뜩이나 불친절하고 느려터진 이곳 서비스 선터에 전화를 걸어 사람 오길 기다는게 귀찮아서 미루고만 있었는데, 억지로 하루 이틀 지나보니 없이 사는 것도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Reader 읽고 podcast 듣고 email 체크하면서 쫒기듯 보냈던 저녁 시간이 무얼하며 보내던지간에 좀 더 여유로워졌고, 초저녁에 신경을 덜 자극해서인지 밤이 깊어지니 차분해지면서 편안하게 잠이 왔다.

항상 있던 것들이 "없는" 상태는 - 집, 통장, 핸드폰, 인터넷 나아가 친구들까지 - 좀 곤란하고 때론 허전하지만 새로이 깨닫게 되는 점도 많다.

2009년 12월 15일 화요일

소풍

아일랜드, 우크라이나,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온 여자 다섯명이 우리팀인데, team building 명목으로 오늘 가까운 섬에서 반나절을 보내기로 해놓고는 다들 귀찮아져서 결국 mall에 가서 발마사지 받고 일찌감치 헤어졌다.

Such is (Singaporean) life!

20091215

2009년 12월 14일 월요일

이사

새집으로 이사를 했다. 이번해엔 정말 여러번 짐을 싸고, 풀고 하고 있다. 아마 마지막이겠지, 올해엔.

스트리트 뷰로 본 새집

좌측에 SOHO@Farrer라 적힌 흰색 건물 4층이 나의 집. 앞쪽 창문으로는 공원이 내려다 보이고 골목 뒷쪽으로는 번화한 Little India의 거리가 이어진다. 주말이면 어마어마하게 많은 인도계 남자들이 - 휴일을 맞은 construction worker들 - 모여들어 공원에 누워 낮잠을 청하거나 공을 차거나 하는데 대체로 평화롭다고 한다.
 
집안의 가구는 모두 Ikea로 깔끔하게 꾸며주었다. Built-in 수납공간이 부족하고 부엌이 약간 좁은 것을 제외하면 모두 마음에 든다.

살림살이 불리지 말고 검소하게 지내야지.

Google office

오피스 내 자리에서 내려다본 풍경. 무더운 오후면 저 멀리 바다 끝에서 비구름이 몰려오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고, 선착장의 거대한 기중기가 컨테이너 박스를 차례대로 쌓아 옮기는 재미난 모습을 구경할 수도 있다. 안쪽 해안선을 따라 하얗게 빛나는 것은 동쪽 해변의 bed town에 늘어선 아파트 단지들.  

워낙 좁은 땅이라 이 정도면 싱가폴의 많은 부분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20091211

Back to Singapore

Kuala Lumpur는 싱가폴에 비하면 서울과 많이 닮은 구석이 많은 것 같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거칠게 밀치고 지나가거나 열차가 꽉 찼는데도 꾸역꾸역 들이미는 것을 보고 미묘한 차이를 감지할 수 있었다. 쇼핑몰의 내부는 훨씬 더 모던하고 동선이 매끈했다. 반면, 거리는 개발의 시차로 인해 상이한 요소들이 뒤엉켜 혼란스러웠다. 서울사람이라면 익숙할, 도시 전체가 욕망으로 들끓는 듯한 그런 기류를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욕심없이 예의바르고 평화롭게 부유하는 것이 목적인 듯한 싱가폴과는 전혀 다른 다이내믹이었다.

뉴욕에서 온 한 동료는 싱가폴이 언제나 "real time"이며 사람들은 "here and now"에 살고 있는 것 같다고 이야기했었다. 축적, 개발, 상승에 대한 악착같은 욕구없이 현재형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싱가폴을 "인간이 만든 paradise"라고 소개했었다 - 글쎄, 잘 모르겠다. 난 이곳에서 무기력함을 감지할 때가 많다. 그리고 종종 기운이 빠진다. 어쩌면 "paradise"가 나라는 사람의 기질에 적합하지 않은 삶의 mode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09년 12월 9일 수요일

Malaysia

Kuala Lumpur로 짧은 출장을 다녀왔다. 말레이시아는 싱가폴과 달리 드넓은 영토의 많은 부분이 검푸른 녹지로 덮여있다. 저물녘에 시 외곽 도로는 조금 스산해보였다.

낯선 곳에서 압축된 일정에 시달린 탓인지, 돌아오는 길에 처음으로 싱가폴이 집처럼 느껴지면서 가벼운 안도감이 들었다. 아, 집에 오니 좋다.
20091208

2009년 12월 6일 일요일

Clark Quay

평소 기계를 탐하는 편은 아니지만 각 상품들이 생활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늘 궁금하긴 하다. 가끔 리서치도 해본다. 그러나 일단 아이폰을 손에 넣고나니 아이팟, 플립, 카메라, 핸드폰, ebook에 대한 관심과 열망이 단숨에 잠잠해졌다.
20091206 Clark Quay에서 찍은 첫사진

2009년 12월 5일 토요일

Iphone

아이폰을 사기로 결심했다. 탐나는 기능들이 많다지만 사실 카메라가 필요하기 때문.

지난해에 찍은 사진의 80%가 초 저화질 핸드폰 카메라로 찍은 것들이었다. 무늬만 카메라였지 성능은 토이 수준이었는데도 늘 그것만 사용하게 됐다. 가장 좋은 카메라는 가장 가까이 있는 카메라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고 (세상의 많은 일들이 그렇다!) 이번엔 쓸만한 카메라가 내장된 핸드폰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오후에 나가보니 은행에서는 개인 연락처가 있어야 계좌를 열어준다고 하고 SingTel 대리점에서는 은행 계좌가 있어야 개통해 준다고 하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16G는 때마침 품절이라 하니 어쩌란 말인가.

해뜨면 다른 대리점에서 다시 시도해보리라!

2009년 12월 4일 금요일

Anthropologist

솔직히 엇그제는 이곳의 삶의 조건이 시원찮은 것 같고 혼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싶어 일찍 박차고 나와 몇시간 동안 거리를 쏘다녔다.

사실 싱가폴에서의 생활이 어떨지 진지하게 상상해보지 않았다. 애머스트가 보스톤 근교인줄로만 짐작했던 그때처럼 (실제로는 highway를 달려 3시간 거리), 싱가폴이 South East Asia의 정확히 어느 지점에 위치하는지조차 가물가물한 지리적, 문화적인 무지함과 더불어 생활상의 어려움도 구름처럼 막연한 상태로 이곳에 왔다.

예측하지 못한 것들이 일으키는 당혹감과 피로, 새로이 주어진 조건에 대한 세속적인 판단 같은 것들 때문에 나의 타지 생활은 늘 한탄과 원망과 눈물로 시작되는 것 같다. (눈물은, 얼마전 동네 음식을 사다먹고 대단히 체한게 너무 아프고 황당해서 좀 울었다)

이럴땐 군중에 떠밀려 낯선 거리를 구경하면 도움이 된다. 다른 모양과 냄새를 지닌 사람들을 관찰하고, 익숙하지 않은 건물 모양과 상품들과 행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없었던 호기심이 생겨나고 마음도 조금은 넓어지는 기분이다. 객관화의 힘? 인문학 교과서 같은 이야기지만 사실 진지한 인류학자의 마음가짐이라면 어디에서든 모든 하루가 고생스러운 일상이기보다는 흥미롭기 그지없는 현장탐사가 될 것이다.

2009년 12월 1일 화요일

Mall

싱가폴 출장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Well, you've been to a mall, right?" 이라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는 싱가폴에 대해 단편적이지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이곳엔 Mall or nothing이라고 할만큼 도처에 mall이 널려있다.

왠만한 스포츠광이 아닌 바에야 야외 활동을 즐길만한 날씨가 아니다보니 실내 활동이 자연스럽다. 이곳의 mall은 거리 곳곳에 쥐덫처럼 늘어서 뜨거운 거리에 에어컨 바람을 흘리며 행인을 끌어모으거나, 복잡하게 설계된 지하통로를 통해 MRT와 공공건물로부터 군중을 수혈받는다.

집을 보러다닐때도 agent는 집보다는 근처 mall의 위치, mall의 규모, mall의 건설 계획 등 mall의 소개에 더 열을 올리곤 했었다. 집보다 mall을 먼저 보여주는 경우도 있어서 집에 무슨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것인지 의심해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곳의 mall을 몇번 겪어보니, 오락거리이자 가족 행사이자 취미이고 산책과 휴식과 만남을 행하는 mall-ing은 보통 싱가폴 사람들의 생활에서 핵심적인 activity인 것 같다. 서울에서 재미삼아 행하는 쇼핑과는 scale과 intensity가 전혀 다르게 느껴졌다. 근처에 mall이 있다는 건 단순히 가까운데 콩나물 파는 곳이 있다는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Orchard Road의 노골적인 현란함과 환상성은 옆집 mall이 제공하는 그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지만, 이곳 출신이라면 길을 잃을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