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책을 정리했다.
책은 그냥 종이와는 달라서 도저히 분리수거함에 집어넣을 수가 없다. 유년시절부터 교육된 책에 대한 경외감 때문이겠지만, 책을 버리는 건 왠지 우주적인 질서에 역행하는 듯한 그런 찜찜함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죄책감에 사서 읽지 않은 책들과,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게된 분야 그리고 재미있게 읽었으나 소장할 이유까지는 없는 책들을 골라내는데 여러 시간이 걸렸다. 냉정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실제로 관심을 갖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범위와 깊이의 책인지 또, 계속 보관하면서 두고두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정확히 판단하는 데 자꾸 개입하는 의무감과 허영, 오지랖 같은 것들 때문이다. 계속 붙들고 있으려는 책들은 사실 결코 나의 일부가 되지 못한 책들이다.
고심끝에 걸러낸 책들을 신촌의 "숨어있는 책"으로 가져가 팔았다. 골초인데다 안색이 창백한 책벌레 스타일의 주인장 아저씨가 책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반겨주고, 내가 가져가는 책들을 보고 "오, 아주 마음에 드는 책입니다"라고 말해주는 거의 유일한 곳이다. 덕분에 선생님에게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은 어린이처럼 나는 조금 으쓱해지고, 또 많이 가벼워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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