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5월 24일 일요일

[노트] A Happy Commercial 행복한 소비-자본과 건축공간

소비공간은 여러가지 활동이 발생하는 공간적 실체이자 다양한 사회, 경제, 문화적 가치가 반영되는 사회적 공간이다. 이러한 소비공간은 전근대의 시대를 지나 근대에 접어들면서 거대자본의 탁생과 함께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자본들에 의한 시장구조의 변화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완력한 분리의 체계를 양산했다. 생산품으로서의 상품은 생산자의 노동을 철저하게 분리시킨 후 소비자에게 전달된다. 노동의 흔적을 읽을 수 없는 상품은 상품 자체만의 동일identity를 가져야 했다. 그리고 그것이 소비자에게 구매의 행동까지 이끌어지기 위해선 상품의 스펙터클spectacle, 즉 상품의 '기만적 외양'이 필요했다. 그것이 바로 환등상phantasmagoria이다. 

근대적 주체로서의 만보객은 소비사회를 통해 형성된다. 발터 벤야민은 환등상에 취해 비틀거리는 배회하는 소비자들에게 '만보객Flâneur'이라는 은유적 신분을 부여한다. 만보객은 환등상의 소비를 열망하며, 그리고 그 소비의 행동으로 쇼핑을 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느리게 걷는 행위'를 통해서 최초의 행동의 상품화를 이끌어낸 주체이다. 

근대적 시선은 환등상이라는 상품의 스펙터클 뿐만이 아니라 그러한 환등상 속에 존재하는 자신의 이미지까지 상품의 세상에 높여짐을 인식하면서 성립된다. 이 점은 자신의 행동하는 이미지 자체를 의식하며, 그리고 그러한 시선을 욕망하는 나르시즘적 측면을 행동의 상품화는 의도하는데 이 점에서 근대적 시선의 형성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268)

만보객과 상품. 이 둘은 만나는 방법 또한 다양하다. 즉, 그것은 만보객의 걷는 방법과 상품이 만보객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다양하다 할 수 있다. 이 둘이 만나려면 장소가 필요하다. 그 장소는 1차적으로 도시, 거리 아케이드 (벤야민의 19세기형 만보), 백화점 같은 나의 몸이 담겨 있는 공간적 장소일 수도 있고, TV나 라디오처럼 물리적인 나의 몸의 일부를 이용하는 제한적 장소(미디어) 일 수도 있다. 이런 미디어를 통한 만보는 나의 몸을 적극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소비적 만보에 비해 공간의사용을 최소화하며, 상품은 실제의 물성을 떠나 이미지로서 만보객에게 다가온다. (304)

2009년 5월 23일 토요일

2009년 5월 21일 목요일

밴드

 

어제 큰 행사를 마치고 모두와 맥주 한잔 하러 간 곳에 외국인 언니들이 연주를 하고 있었다. 3년전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일산을 방문했을 때 곳곳에서 외국인 밴드가 연주하고 있는 것을 보고 무척 당황했던 기억이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들의 "근무하는" 모습이 전면에 드러나 보인 것이 처음이었고 또 가까운 사람과 한잔하는 그 사적인 공간에서 감정적인 차원의 서비스를 받는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뻘쭘했던 것이다.

 

어제도 그 묘한 불편스러움은 여전했고, 내가 좀 더 나이를 먹었다던가 직장인이 되었다거나 일산의 변두리가 아닌 강남 한복판이라는 사실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20090521 삼성동

남의 동네 아파트

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인데 남의 동네 아파트는 왜 이리도 낯선지. 


20090519 중계동 

2009년 5월 18일 월요일

콩나무

얼마전 서점에서 책을 사고 콩을 담은 캔 하나를 받았다. 재미삼아 물을 주고 기다렸더니 곧 커다란 싹이 났고, 주말 동안 혼자서 이만큼 자라나 있다. 다음주 쯤에 낚시줄을 드리워주면 줄줄 감고 올라가려나.  

콩에 적힌 메세지가 "부자되세요"여서 적잖이 실망했지만 (언제부터 저것이 덕담의 일반 명사가 되었나), 평소 티격태격하는 나와 동료 S군의 틈바구니에서 평화로운 식물이 잘 자라고 있다는데 어쩐지 귀여운 구석이 있어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2009년 5월 17일 일요일

종로 산책

다음주 초에 있을 큰 발표의 내용을 구상하러 종로에 나갔다. 평소엔 집과 회사만 오가다보니 종로엔 격주로 걸음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변해있는 경관에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피맛골을 형성하던 낡고 낮은 옛 건물들은 보자기에 쌓인 듯 엉성하게 감추어진 채 허물어져 가는 중이다.

얼마전 피맛골에 얽힌 사람 사는 이야기를 취재한 TV 프로를 본 기억이 나는데, 한 나이 지긋한 아저씨가 이 거리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를 물어보니, "이 건물 2층에 '뚜주르'라는 다방이 있었는데, 지인과 이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하고 나와보니 없어져서 그렇다" 고 대답했다.

어떤 이들에겐 수십년간 익숙했던 생활 공간들을 아무렇게나 파괴해도 되는 것일까.

산책 중 목격한 또 하나의 사실은, 대로변을 마주한 세운상가 한 동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미 파란 잔디까지 심어진 것을 보면 공사가 끝난지 꽤 오래된 것 같았다.


왠지 모르게 크게 침해받은 기분이 들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최고급 전자 상가로서의 그 명성을 목격한 적도, 쇠락 이후에 도청/감청 장비나 포르노 비디오 같은 요상한 물건들을 구하기 위해 그곳을 드나든 적도 없지만, 세운상가는 나에게 최첨단에 대한 근대적 욕망을 증거하며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이 도시의 어떤 과거와 접속하고 싶을때, 세운상가는 그 창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거칠고 투박한 구조와 묘한 주상 복합의 형태가 요즘 건물들과 달리 낯설다 못해 신비로워서 이따금씩 길을 지날 때마다 눈으로 일별하곤 했던 것인데.

서울의 거리를 걸으면 낡고 의미있고 아름다운 것들이 급속도로 파괴되는 것이 너무나 자주 목격되어 절박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본과 이윤과 시각적 합리성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몰라도, 그러한 언어로 환원될 수 없는 많은 가치들이 너무나 가볍게 취급되는 듯 해서 몹시 슬퍼진다.

20090517 종로